엘토: 크리스타 루드비히
연주: 북독일 방송 관현악단
지휘: 한스 크나퍼츠부쉬
녹음: 1962년 3월 24일 실황녹음
(Nuova Era) CD6304
크나퍼츠부쉬는 연주에서 즉흥성을 존중했기 때문에 리허설에 별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지휘봉은 움직임이 극단적으로 작고 악단원에 대한 지시도 꼭 필요한 말 이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대체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란 연습을 될수록 빨리 끝내 주는 지휘자를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크니퍼츠부쉬는 자주 연주해서 잘 아는 곡을 연습하게 되면, "여러분은 이 곡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도 잘 안다. 그런데 뭣 때문에 연습하는가!"라고 뇌까렸다고 합니다. 데카의 녹음 주임이었던 존 컬쇼는 크나퍼츠부쉬가 부득이 어떤 곡을 연습시키고 난뒤 일어난 일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즉 그런 연습이 있은 뒤 , 실제 공연 때 오케스트라가 엉망이 된 것입니다. 앞으로 나가는 자가 있는가 하면 뒤로 돌아가는 연주자도 있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식은 땀으로 흠뻑 옷을 적시며 지휘대에서 내려온 크나퍼츠부쉬는 "그것-그놈의 연습-만 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말이야."라고 심술이 나서 투덜거렸다고 합니다. 그는 독설가로서도 유명했습니다. 토스카니니가 열광적인 유행의 첨단을 내딛고 있을 때, 어중이 떠중이가 모두 이탈리아인을 흉내내서 암보로 지휘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크나퍼츠부쉬만은 언제나 총보를 앞에 놓고 지휘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째서냐고? 악보를 읽을 수 있으니까 그러지!"라는 말이 그의 퉁명스런 대답이었습니다. 그는 또 무뚝뚝하고 완고하며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놓여도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나치를 아주 싫어한 그는 나치당에 들어가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1936년 뮌헨 가극장에서 쫓겨났다. 이 무렵 나치에 협력한 R. 슈트라우스에 대해 컬소가 의견을 묻자, 그는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오랜 세월 그와 카드 놀이를 해왔지만, 그는 꼭 돼지 같았어요."
H.숀버그는 그의 명저 (위대한 지휘자들)에서 크나퍼츠부쉬의 특징을 짤막하지만 매우 선명하게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뮌헨, 빈, 찰스부르크, 바이로이트에서 활약한 한스 크나퍼츠부쉬는 바그너 연주로 유명하며 또 그보다도 아주 느린 템포로 소문 나 있었습니다.
(아마 그는 이것을 선생인 한스 리히터에게서 이어 받은 모양입니다.) 그는 연주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고 대단한 명성도 주로 좁은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모든 사람으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통해서, 보다 향기롭고 보다 유유한 지휘 양식에 이어지는 것, 성실, 이상, 음악에 대한 순수한 헌신을 느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크나퍼츠부쉬의 레퍼토리는 결코 많은 편이 아니다. 그는 무엇이든 다 해내는 카라안류의 지휘자가 아니다. 그는 자기가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최고로 표현해 내는 데에서만 기쁨과 자랑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특히 바그너와 브루크너 연주에서 그러했습니다. 브루크너 연주에서는 원전판을 쓰지 않는 야릇한 (?) 고집이 얼마간 저항을 느끼게 할지 모르지만, 바그너 연주는 태산 준령처럼 우뚝 치솟을 거봉입니다. 그는 음악의 내부로 깊숙히 파고 들어 바그너가 쓴 모든 음표에 불길과 생명을 부여했고, 악단원들을 그 불길속에 휩싸이게 하는 비술을 터득하고 있었습니다.
이 '바그너 앨범'은 바그너 탄생 150주년이 되며 또 크나퍼츠부쉬가 75세가 되는 해인 1962년 3월 24일 함부르크에서의 실황 녹음입니다.
레퍼토리는 약간 다르지만 크나퍼츠부쉬는 이 연주로부터 8개월 후인 11월, 그의 생일을 기념하여 뮌헨 필하모니 관현악단과 스튜디오 녹음한 또 다른 '바그너 앨범'이 레코드 (Westminster CD 32XK-12)로 남아 있습니다.
1.'뉘른베르그의 마이스터징거'제1막 전주곡, 제3막 전주곡 악극 '뉘른베르그의 마이스터징거'는 1867년, 바그너 원숙기의 작품이며 그로서는 매우 드문 희가극입니다. 명가수, 즉 마이스터징거란 독일 중세에 상공업이 발달하여 시민 계층이 차츰 흥성해지면서 시음악 같은 예술이 귀족이나 신관들로부터 시민에게로 옮겨졌는데 결국 구두 직공, 제빵업자등 갖가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우두머리이면서 동시에 가수인 자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들을 마이스터징거라고 불렀다. 이 악극은 구두 직공 마이스터징거인 한스 작스를 중심으로 하여 독일 서민 예술이 꽃을 피우는 명쾌한 작품입니다.
특히 제1막의 전주곡은 일반 연주회에서 곧잘 연주되는 호쾌하고 극적인 음악입니다. 마이스터징거의 동기를 중심으로하여 사랑의 동기, 명가수들의 행진의 동기 등이 교묘하게 짜여진 채 당당하게 종결부로 발전되어 나간다. 서두는 소박한 리듬과 빠른 템포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구석구석까지 치밀하게 신경을 쓴 각 음형의 교묘한 결합은 놀랍다.
내부의 커다란 추진력과 넘치는 두터운 점착력을 지닌 채 연주되는 현은 감동적이며 특히 '사랑의 동기'에서의 가슴을 파고드는 서정성은 크나퍼츠부쉬가 아니고는 들을 수 없는 명연주입니다.
2. '트리스탄과 이졸데'제1막 전주곡, 이졸데의 죽음 악극'트리스탄과 이졸데' (1859년 작곡)는 '파르지활'이나 '니벨룽갠의 반지'4부작과 아울러 바그너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다. 철저한 반음계적 수법과 무한 선율을 써서 영원히 이룩될 수 없는 "사랑의 무한한 그리움"을 표현한 특이한 음악이며, 멀지 않아 독일 낭만파를 붕괴시킬 무조의 조짐이 엿보인다. 제1막 (전주곡)과 마지막 막의 (이졸데의 죽음)은 연주회용으로 흔히 연속 연주됩니다. 섹스의 불건전한 도취와 관능, 덧없는 절망감과 쓸쓸한 고독감이 이토록 여실하게 음악화된 예도 드물다.
이 연주에서 루드비히의 노래도 뛰어나지만, 크나퍼츠부쉬의 강렬한 통솔력은 치열한 관능의 고양과 사랑의 몸부림 그리고 애욕의 도취 속에 우리의 넋을 잃게 만든다.
3.'신들의 황혼'마지막 장면
불사신의 영웅 지그후리트가 끝내 죽고, 자기 잘못을 깨달은 아내 브륀힐데가 라인 강변에 장작을 쌓아올린 뒤 지그후리트의 주검을 태우게 하고는 그녀 자신도 애마를 타고 그 불길 속에 뛰어든다. 드디어 신들의 성 발하라에 그 불길이 옮겨가 멸망의 섬광이 하늘 가득히 번져 나간다.
여기서의 크나퍼츠부쉬의 그지없이 숭고하고 깊으며 장대한 스케일은 그저 압도된다는 한마디로 밖에는 달리 표현할 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