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제1번 D장조 (거인)

연주: 콜럼비아 교향악단

지휘: 브루노 발터

녹음: 1961년 1월

(Columbia) LP Y30047

말러 (Gustav Mahler, 1860-1911)의 교향곡 제1번 '거인' (The Titan)은 그가 24세 때 착수하여 29세에 완성한 곡입니다. 그의 다른 교향곡에 비하면 짧은 편에 속하며 연주 시간 약 50여 분에 불과하다. 이 교향곡은 4년 전에 작곡한 가곡집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Lieder eines fahrenden Gesellen, 1884)와는 쌍둥이와 같은 관계를 지닌다. 말러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친밀감을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정감으로 넘치는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그대로 이 교향곡에 사용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후르트벵글러 지휘, D.휫셔-디스카우의 명반 (Seraphim 60272, 1952년 녹음)으로 이 가곡집을 이미 들은 사람이라면 한층 더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말러에게 있어서 가곡과 교향곡은 서로 다른 세계를 주장하는 별개의 표현형태가 아니고 오히려 같은 표현 의식의 뿌리에서 솟아난 두 개의 가지에 불과했습니다. 그의 가곡은 대부분 관현악 반주로 되어 있으며, 슈베르트나 슈만, 볼후 등의 리트가 말과 음악이 서로 변증법적으로 작용하여 말들어진 것과는 달리, 텍스트가 암시하는 '감정의 풍경'을 출발점으로 하고 모든 표현을 인성과 관현악의 팔레트로 그려 내려는 점에서, 그의 가곡이 본질적으로는 교향적 음악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육성은 관현악 전개에 알맞는 자리를 베풀어 주는 몫을 할 뿐이었습니다.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순기악적인 형식에 따른 교향곡도 그대로 해당되는 말러음악의 본질적인 특징이었습니다. 민요적인 성격을 지닌 소박한 전음계적 선율선과, 그러한 소박함과는 정반대의 다채롭고 섬세한 화성 및 풍성한 음향, 그리고 그 두 가지 요소가 서로 협력하여 말들어 내는 오묘한 심정의 무늬 등 모순되는 두개의 대립적 성격의 독특한 결합 위에 말러 음악은 성립되어 있습니다. 즉 그의 교향곡은 비록 육성과 말이 포함되지 않는 경우에도 언제나 하나의 '무언가'였던 것입니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와 함께 다감한 청춘과 낭만적인 환상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는 그의 교향곡 제1번 제1악장의 제1주제는 '가곡집'의 제2곡'아침 들판을 건너가면'의 젊음으로 넘치는 명랑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의 젊음으로 넘치는 명랑한 멜로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또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 제4곡 (연인의 푸른 눈)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저 보리수의 선율-젊은이가 실연의 아픈 가슴을 안고 보리수 나무 그늘에서 흩날려 떨어지는 꽃송이를 보며 비로소 영혼의 안식을 찾아내는, 평화와 고요로 가득찬 꿈처럼 아름다운 선율이 제3악장의 트리오 부분에 나타난다. 그리고 교향곡 제1번에서는 이 제1, 제3악장이 가장 아름답다.

제1악장은 전원의 새벽에서 시작됩니다. 청명한 아침의 맑은 기분, 이윽고 해가 돋아 오르고 뻐꾸기가 흥겹게 운다. 한가로운 오스트리아의 전원 풍경이 차례로 펼쳐진다. 그리고 곡은 차츰 고양되어 격렬함의 정점에 이른다. 제2악장은 거친 시골의 무곡 같은 스케르쪼와 부드러운 왈츠의 트리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제3악장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 고요한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는 '보리수'의 선율을 트리오에 지닌, 장송행진곡풍의 악장이며 팀파니의 리듬을 타고 저현의 어두운 민요풍의 주제를 연주합니다.

이어 표정적인 오보에의 대선율이 얽혀드는데, 이 두 개의 멜로디는 매우 인상적이어서 한 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제4악장은 가장 길고 폭풍처럼 격렬한 감정을 쏟아 부은 악장이며, 말러의 괴로움이 가슴에 아프게 파고 든다. 그러나 표면상의 격렬함과 정열에 비해 곡의 내용은 다른 악장에 비해 충실하지 못하다. 차이코프스키풍의 강요하는 듯한 절규적 요소가 너무 강하다. 그렇다고 이 교ㅎ곡 전체를 손상할 정도는 물론 아니다.

말러의 가장 가까은 벗이며 제자였던 발터는 이 곡의 연주에서 말러의 감정을 남김없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 많은 발터의 레코드 중에서도 이 연주는 최고 걸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명반입니다. 제1악장 서두의 은은한 분위기에는 온갖 음악적 뉘앙스와 아름아움이 물씬 감돌고 있습니다.

뻐꾸기 울음 소리 하나를 예로 들어도 그 절묘한 리듬감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멀리서 들려오는 호른의 뿔피리 소리 위로 겹쳐지는 훌루트와 클라리네트의 뻐꾸기 소리가 얼마나 싱싱한가! 현과 금관에 발터의 입김이 스며들면 악단은 단연 약동하는 생명력으로 넘치면서 눈부신 클라이맥스로 치달아 올라간다. 이 제1악장과 제2악장의 거칠고 소박한 시골 무곡이 풍기는 매력적인 연주는 발터의 저 잊을 수 없는 베토벤 제6번 교향곡 (전원)의 명연주를 연상시킨다. 제3악장의 같은 농도도 인상적입니다. 어떤 사소한 세부도 소홀히 함이 없이, 완전히 낭만적인 표정을 돋보인다. 트리오에서는 매혹적인 레가토와 하모니가 황홀한 도취경을 이룩합니다. 제4악장의 태풍처럼 몰아치는 처절함도 특기할 만하다. 아무리 그 격렬함이 치열해도 거기에는 여유가 있어서 딱딱함이나 위협을 느끼게 하지는 않는 발터 특유의 은은함, 온화함이 베어 있습니다.

발터 지휘의 이 교향곡 제1번은 그가 자기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하면서도 그 모두가 말러의 음악 자체에 동화되었고 또 나아가서는 그 말러의 음악자체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벗어나 보편성을 얻고 있습니다. 발터는 말러라는 음악가에 대한 좋다 싫다는 따위의 감정을 초월하여 만인을 감동시키는 예술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야말로 지휘자의 최고의 경지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특히 제3악장에서의 구슬픈 주제에 이은 매혹적인 오보에의 선율과 리듬은 발터가 아니고는 절대로 들려 줄 수가 없는 표현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젊은이의 천박한 격정만을 돋보여 주기가 십상인 제4악장에서도 발터의 손이 닿으면 어김없이 뛰어난 음악이 되어 흘러 넘친다.

그 풍성한 하모니와 느린 템포, 유려하게 흘러 넘치는 멜로디는 말러연주의 제1인자인 발터의 진가를 충분히 감지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이 레코드를 듣는 모든 사람들을 진심으로 만족시키고 곡의 아름다음을 진한 감동으로 인식시킬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말러 교향곡 연주에 있어서 하나의 이정표 같은 명반이라고 서슴없이 말 할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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